24.05.29
듣자마자 눈물이 나오는 노래가 있다. 퇴근길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더 그렇다. 슬픈 가사보다는 희망 있는 노래가 코 끝을 시큰하게 만든다. 내 안에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알게 될 때 밀려오는 슬픔이 있다. 여러 번의 실패가 쌓이고 조급해진 나는 모든 경험이 경험 자체로 빛나던 어릴 때를 떠올린다. 현재의 나에 대한 미움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고 질타하게 만든다. 내가 만든 미움과 주저함으로 나의 세계는 확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호막을 치며 나의 세계는 점점 작아진다. 타인이 궁금하지도 나라는 사람이 무얼 좋아하고 강렬히 원했는지도 잊으며 최대한 나의 에너지를 아껴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사용한다.
오늘도 겨우 눈을 떴다. 분명 에너지를 아껴 나를 위해서만 쓰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매일매일이 힘이 든다. 비축한 에너지는 채워지지 않고 소진되어 하루하루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아마도 이렇게 된 데에는 작은 의심이 시작이었을 거다. 정답에 대한 두려움. 그 답에 맞춰 행동해야 할 것 같은 강박. 그리고 최대한 무리 안에서 튀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나의 모든 시신경들이 두려움과 자기 검열을 만든다.
읽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추론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으며 그들이 나에게 들려주는 정보는 그저 나에게는 닿자마자 흩어지는 파편들 뿐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들, 각자가 갖고 있는 섬세한 언어의 모양, 말할 때의 표정과 습관 등 각자가 갖고 있는 특징들은 내게 기억되지 않는다. 그들의 삶과 저마다 품고 있던 이야기도 내게는 의미 없는 소음이다.
할 말을 삼킨다.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이쁜 옷을 입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며 최대한 안전하게 평범하게 살고 있다 생각한다. 그렇게 1년이 지난다. 문득 외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편이 낫다. 다시 열심히 친구들과 연락하며 다양한 관계를 만들며 나를 보여주고 나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생각하니 벌써 피곤하다. 또 1년이 흘렀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 회복이 되지 않는다. 도태된다.
원래 내가 잘하던 걸 해보려고 한다. 책을 읽고 사람들을 탐색하고 그들에게 배우고 싶은 점들을 노트에 빼곡히 적으며 그렇게 될 나를 상상하며 기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한다. 그 모든 과정이 재밌다. 아니 재밌었다. 지금은 그 탐색이라는 것도 힘에 부친다. 다시 닮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뭔지 이제는 돌아봐야 한다. 머리로는 계속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부풀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곤 또 부풀린다. 부풀리지 말아야 한다. 부풀린다. 부풀리지 않는다. 부풀린다. 문제를 내 안에서 찾는다.
완벽주의와 같은 세상에 잘 알려진 말들로 나의 행동 원인을 분석한다. 의미 없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전에도 완벽주의라는 성향은 알고 있었고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혹은 ADHD? 요즘 성인의 3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는데 역시 나도 그중 하나인 것이가. 산만함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잃게 한 것일까. 부풀린다. 부풀리지 않는다. 아니 부풀린다. 또 내 안에서 문제를 찾는다.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고 싶다. 나에게 너무나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그래서 다시 복기하기도 싫은 그 기억을 꺼내들어야 할까. 남들 다 그냥 그만두라고 할 때 꿋꿋이 버틴 대견스러운 나에게 남은 건 상처뿐이었던 걸까. 혹은 그 이후에 나에게 확신이 없어진 탓일까.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실패를 게이치 않았던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무엇일까.
내 안에서 답을 찾는 것에 지쳐 운동을 해보기로 한다. 매일 성실하게 퇴근 후 헬스장을 가는 루틴을 반복한다. 요즘 계속해서 나의 문제를 찾는 데에만 집중했다. 쓸데없는 자의식과 걱정들을 뒤로한 채 몸을 혹사시키는데 집중한다. 덕분에 오늘은 부풀리지 않는다. 그대로 잠에 든다. 몇 달간 퇴근 후 운동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다. 여름이 왔다.
오늘은 가고 싶었던 카페에 걸어가 보기로 한다. 원래 같으면 버스로 갔을 거리이지만, 30분이면 걸어갈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세상은 파랗게 변했고 풀냄새와 흙 내음이 섞여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에 살랑이는 바람, 완벽한 날씨다. 기분이 좋다.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창밖의 흔들리는 나무를 그저 하염없이 바라본다. 기분이 좋다. 문득 여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으로 부풀리지 않은 채 이 문장이 그대로 다가온다. 내일도 그저 여름처럼 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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