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월이 다 지나갔습니다. 올해는 유독 연말이 기다려지는데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새해에 다짐한 것들을 다 이루지 못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깨닫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은가 봐요. 일년 동안 고생했다고 얼른 저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이번 달은 유독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홍길동이라 하루에도 두세 번을 이동하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거든요.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게 많아 어쩔 수 없더라고요. 허허.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것의 장점은, 우연히 따뜻한 장면을 보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그중 기억나는 몇 가지 장면들을 오늘 레터에서 이야기해 볼까 해요.
01.
여느 때와 같이 현충탑 앞을 지나던 길이었습니다. 현충탑 앞에는 현충탑을 바라보며 둘러싸여 있는 벤치가 있었어요. 나무 그늘 아래라 그곳에 사람들이 앉아있는 일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날은 유독 씩씩해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이 앉아있더라고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나이였습니다. 나란히 현충탑을 바라보고 앉아있던 그 둘은, 멀리서부터 무언의 수신호를 보내는 듯 혹은 본인들만의 장난을 하는 듯 약간은 소란스러워 보였어요. 흔한 초등학생들의 모습이라 별 생각 없이 그 둘을 지나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충성!"
아주 강단 있는 단단한 외침이었습니다. 두 아이는 짧고 강하게, 복부의 단단한 뱃심으로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듯한 발성으로 충성을 외쳤습니다. 그들은 제가 지나가는 타이밍만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동시에 일어나 충성을 외치더군요.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장난스러움이 섞인 미소를 띠면서요. 저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터트리며 그 둘을 지나쳤습니다. 둘을 뒤로한 채 걸어오며 그 상황을 다시 곱씹어 보니 그 행동의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동시에 마음 한편이 조금 따뜻해졌습니다. 그날은 현충일이었거든요. 그저 날이 좋은 평소와 별 다를게 없는 날이라 생각하며 안일했던 저에게,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그날의 무게를 저에게 새겨주었습니다.
02.
가끔 이렇게 만나는 장면이 저는 꼭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는 참 신기한 가게를 마주한 적이 있는데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던 중 조금 특이한 간판을 발견했습니다. <네잎클로버 팝니다> 네잎클로버를 파는 가게는 생소해서 처음엔 실제 존재하는 가게가 맞는지, 의심부터 들었어요. 버스가 지나가는 그 짧은 사이, 몇 번이나 간판을 다시 확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네잎클로버를 파고 사는 일이 자주 있는 걸까요. 처음에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흥미롭기만 했던 것 같아요. 행운을 전하는 일이라니, 매우 행복한 가게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조금 더 생각 해 보니 네잎클로버를 통해 행운을 사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떠오르더라고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마음을 감히 가늠할 수 있을까요. 저마다 사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매 순간 간절함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몰라, 어떤 표정과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는 주인장과 저 마다의 간절함을 안고 네잎클로버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장면들은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환기를 주곤 합니다. 잊고 있던 걸 깨닫게 해주고, 그저 무탈한 하루임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들게 해요. 그래서 저는 걷는 내내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덕분에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어 다행입니다. 솔직히 1회를 발송하고 난 다음, 그 이후엔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저도 잘 몰랐거든요. 그래도 지난 레터에 대한 몇 분의 답장을 받으면서 정말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분명, "답장은 언제나 환영합니다."라고 써놨으면서 답장이 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답장 덕에 그날은 하루 종일 행복했습니다. 이렇게나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저의 하루를 얘기하고 레터를 마칠게요.
혹시 평소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시나요?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매우 용기가 필요한 말인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몰랐는데 저는 저의 힘듦을 내색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더라고요. 그래도 최근에 용기 내어 아주 당차게 말했습니다. 전화로 이런저런 부연 설명은 생략한 채 대뜸 힘들다고 크게 외쳤거든요. 사실 그날 상대는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조금 이기적으로 보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ㅎㅎ, 그날은 마음껏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싶은 날이었어요. 스스로 괜찮다고 다짐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 이렇게 말로 뱉고 나면 큰일로 여겨졌던, 마음을 동요시키는 일들, 혹은 큰 슬픔과 무력감도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이날은 다행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참 괜찮은 하루였습니다. 불행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넘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가 되는 것 같아, 이 말을 더 곱씹게 되는 날이었어요. 이 레터를 수신하는 이들도 조금 힘들었던 하루가 있다면, 그런 날은 그저 그렇게 잠시 흘러가는 날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9월의 편지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번보다 약간은 두서없었던 것 같지만,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만 써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이번 달 수집으로 장식 해볼게요. 부디 무탈한 하루를 보내시길.
-노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