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30 에세이
영화, 드라마, 1인 미디어 콘텐츠 등 각자가 갖고 있는 성격과 특성이 다 다르다. 그 성격을 고려해 지금 내게 필요한 무드는 무엇인지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미디어마다 나에게 주는 힘과 영향이 천차만별이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오늘은 무기력이 맴도는 하루였다. 조금 일찍 일어난 탓에 아침 할 일을 다하고서도 출근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이 시간을 어떻게 유익하게 보낼지 고민하며 애꿎은 OTT 플랫폼만 하염없이 스크롤한다.
온전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땐 화려한 영상미에 웅장한 사운드,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영화보다는 일상의 잔잔함을 갖고 있는 드라마나 예능을 주로 선택한다. 일상에서 오는 잔잔함과 유쾌함이 가장 나를 평온한 상태로 만든다는 걸 내 스스로도 잘 아는 것 같다. 이렇게 감정이 눈 녹듯이 말랑해지면 나는 내가 느낀 모든 감정들을 속절없이 뱉어버리고 만다. 이 상태는 때로 나를 위기로 만든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 검열의 과정을 도려낸 채 가장 순수한 나의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이 때는 상대가 손쉽게 나의 본질을 꿰뚫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 순간을 누구보다 유달리 많이 경험한 이가 있다. 드라마를 본 직후가 아님에도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사람. 혹은 그런 공간에 자주 방문하며 속의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 사람, 혹은 한가로운 아침에 홀로 앉아 온갖 상념들을 키우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한 사람. 물론 이 모든 걸 다 함께 한 사람도 있다.
조금 이르게 카페에 도착해 상대를 기다리며 먼저 나온 음료를 마시다 보면, 빠른 걸음으로 긴장되어 있던 몸이 풀어지고 심신이 안정되면서 그 사이에 마주한 장면들은 온갖 다양한 주제를 떠오르게 한다. 그 순간에 바라본 풍경에 따라 그 날의 이야깃거리가 결정된다. 계절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창가의 자리는 그 계절에 있었던 과거의 일을 연상케 하고, 카페 안쪽 구석 자리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행동과 들려온 대화소리는 또 그에 맞는 대화거리를 만든다.
대화는 상념을 표출하기에 매우 최적화된 방법이지만, 그 방법을 남발하여 상대의 시간을 빼앗거나, 상대의 허용치를 초과하는 순간이 오게 되면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산만하거나, 매우 감성적인 극 F 성향의 사람으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경우를 대비하여 마련한 나만의 적절한 대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록이다. 상대에게 마구잡이로 털어놓고 싶은 그 순간에 전화기를 붙들거나 카톡을 하기보다는, 공책을 꺼내 들어 지금 하고 싶었던 말과 생각을 마음껏 뱉어내면 되는 것이다. 이 기록은 쌓여 어떤 순간이든 나만의 가치관 꺼내 보일 수 있는 힘을 만들고,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만들어낸다. 한껏 무르익은 자리에서 술에 기분좋게 취한 상대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도 나만의 통찰로 끝없는 물음표를 잠재우는 저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나의 기록은 점점 본인의 영역을 뻗쳐나가며 모든 영역을 장악하려고 든다. 관찰 예능을 보며 느낀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 책을 보다 밑줄 친 구절, 친구와의 유익한 대화를 복기하는 것과 나의 하루의 TMI를 모조리 적는 것. 이 모든 것이 기록이 될 수 있다. 그 기록이 쌓여 나의 취향과 선호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기록의 순기능일 것이다.
기록을 통해 나의 하루를 돌이켜보는 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 주고 계속 행동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기록이 쌓여 나는 기록하는 게 취미인 사람이 되고, 이런 취미가 생긴다는 건 삶을 지탱해 주는 단단한 행복을 갖고 있는 것과도 같다. 고단한 하루 끝에 잠시라도 걱정을 내려놓고 나를 몰두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하나만 있다면 삶은 그럭저럭 버틸 만해진다.
나에게 기록은 세상을 기억하는 좋은 씬을 만들어주고, 그 장면들은 켜켜이 모여 과거를 기억하는 한 편의 영화가 되어 나타난다. 아마 오늘의 이 기록도 먼 훗날 이때를 돌이켜 볼 때, 그 당시에 맛본 다양한 좌절과 실패보다 먼저 기억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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